한편 유리미술은 2,000여년 동안 고대를 통해서 유리를 만들었던 선두 주자들의 방법을 인정하였으며 이러한 방법이 수 없이
변화되고 기초가 되어 비슷한 기술이 비슷한 유리의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유리는 차츰 소규모의 공장이 중심이 되어 빠르게 용기로 제조 생산되어 그들의 왕국에 사용되었으며 글라스
블로잉은 고대로부터 지배적인 방법으로 공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연속적인 생산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한 독립적으로
작업장에서 그들만의 특별하고 독점적인 물체를 만들 수 있게 하였습니다.
특히 기원 후 1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한 개 밖에 만들 수 없었던 예술적인 유리 모양을 근대에는 공장 시설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튼튼한 기초에 의한 전통적인 기술은 기능적인 모양과 여러 가지 종류를 만들기 위한 예비교육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공장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블로잉 글라스만이 오직 실생활에 쓰이는 용기로써 지난 100여 년간 진정하게 도전하였습니다.
블로잉 글라스는 스스로 로마식 모양의 유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단의 그룹들이 블로잉 파이프에 의해서 모든 종류의 유리잔이나
병이나 화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용도의 용기나 창유리와 거울 등 실질적이며 또 장식적인 물체들을 상당히 폭넓게 만들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각 유리 공장은 산업적으로 더욱 비밀에 싸여 졌고 공장 경영자들은 유일한 기계에 의해서 특별한 종류의
유리 물체를 만들기 위해서 분리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영향이 결국 병유리와 창유리 공장을 탄생 시켰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고대의 블로잉 글라스를 신속하고 간편하게 생산하도록 하였고 가스나 전기가 발명됨에 따라서 불을 밝히는 용도로
쓰이는 유리는 그러한 용도로 쓰여질 수 있도록 특별한 성분으로 구성된 유리를 개발하였고 (초기의 전구는 양적으로 대량 생산이
요구되어 기계화되기까지는 블로잉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생산단가의 평행은 시장 수요를 빨리 안정시켜서 다수의 그런 공장들이
오늘날 남게 되었습니다.
19세기말에 와서 두 사람의 유명한 유리 예술가인 티파니 Tiffany와 갈레 Galle는 유리 공장에서 일하면서 장식적인 유리를
만들었는데 두 사람 다 한 번 밖에 사용할 수 없는 방법으로 유리 장식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아주 독특한 생산 방법은 반복적인 생산을 하기 위하여 더 확실하게 자리잡기까지 예비적인 생산작업이 되었습니다.
갈레와 티파니는 각기 주위의 모임을 만들어 유리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고 동시에 발명을 해 나왔습니다.
더 나아가 새로운 방향과 기동력은 글라스 블로잉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이 모두가 다른 기술의 결합에 의해서 새로운 기술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한번밖에 생산할 수 없는 방법이나 또는 몇 개를 제한되게 생산하는 것으로서 보통 공장의 생산 방법에
비하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하고 또 비경제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리는 산업 혁명으로부터 제외된 많은 인력이
소요된 것으로서 그러한 유리 물체가 존재한다는데 더 많은 가치를 두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로서 두 사람 모두 고대 유리에 심취되어 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인데
갈레는 런던의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Victoria & Alvert Museum에서 공부하였으며
티파니는 로마 시대의 진주빛과 녹청색에 매혹되어 첫 번째로 고대 유리를 재연하였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서 고대 유리 기술을 알고 그것을 만드는 기술이 가능하도록 이끌어 나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유리 예술 분야는 모리스 Morris와 러스킨 Ruskin 그리고 드레서 Dresser 등의 유리 예술가에 의해서
새로운 모양으로 세대 교체를 하여 다시 나타났으며 그 결과 다른 두개의 그룹이 나타났는데 한쪽은 조직적인 솜씨에 의해서
산업 디자인 방면에 치중 하였고 다른 한쪽은 예술가나 공예가들로서 고대 재료에 의해서 고대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공장의 산업적인 제품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유리예술가나 공예가들은 19세기 동안 여러 공장의 후원 아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에 의해서
그 방법을 세대 교체하여 공장의 라인에 도입하는 등 계속적으로 신기하고 새로운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 조사 연구해 나갔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생산품은 경제성이 없는 것들이었으나 그들의 개발은 공장 생산품을 떠나서 하나의 장식품으로서 선봉적인
역할을 해 나왔으며 세기말까지 유리예술계를 지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대중들에게 관심을 고조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유리 예술가들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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